호다누르 라자이이 (Khodanoor Lajaii)

호다누르는 삶과 춤을 사랑했습니다.

만약 그가 정상적인 정부를 가진 나라에서 태어났다면, 그는 유명한 댄서가 되었을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그는 이란의 이슬람 정권 아래 살았고, 자헤단시에서 그들의 요원들에 의해 총살당했습니다. 그는 현재 이란 혁명의 상징이 되었는데, 그 이유는 단지 비극적인 죽음 때문만이 아닙니다. 그에게 있었던 일들과 그가 겪어야 했던 부당한 처사 때문입니다.

호다누르는 발루치인이었습니다. 발루치인은 이란의 남동쪽에 거주하는 민족인데, 오랫동안 믿기 힘든 부당함과 고통을 겪어 왔습니다. 그들은 인위적인 빈곤에 허덕이고 있습니다. 일부 지역에서는 식수가 없어서 수 킬로미터를 걸어야 나오는 우물에서 물을 길어 와야 할 정도인데, 이마저도 안전이 보장되지 않은 우물들입니다. 이 글을 쓰는 날 기준으로 며칠 전, 세살짜리 아이가 우물에 떨어져 죽는 사고도 있었습니다. 호다누르를 포함한 수많은 발루치인들은 출생증명서나 신분증을 가지고 있지 않은데, 때문에 집을 사는 것 등 평범한 사람들이 할 수 있는 많은 거래나 업무들이 그들에게는 허락되지 않습니다.

호다누르가 이란 국민 모두의 관심을 받게 되는 계기가 되는 사건이 있었습니다. 이란의 정권이 정상적인 국가가 아닌 마피아조직과 다름이 없다는 것을 명백하게 보여준 사건이었죠. 알려진 바로는, 호다누르는 누군가와 시비가 붙었는데, 이 사람이 바시지(Basij)라는, 시위를 적극적으로 억압해 왔던 군사조직의 일원이었다는 것입니다. 말다툼 후 그 사람은 호다누르를 망신시키려고 작정했습니다. 그 후에 일어난 일은 더 가관입니다. 이 바시지 일원은 경찰에 있는 자신의 인맥을 사용하고, 한 경찰서장에게 뇌물을 주며 호다누르를 체포했습니다. 정상적인 나라에서 생각할 수 있는 법원의 체포영장같은 것은 필요없었습니다. 하지만 이 바시지 일원에게 체포로는 족하지 않았고, 호다누르가 굴욕을 당했다는 증거를 원했습니다. 이 경찰서에서 호다누르는 장대에 묶여 하룻밤을 보내야 했습니다. 물 한 컵이 그의 바로 앞에, 하지만 손이 닿을 수 없는 곳이 놓여진 채로 말입니다. 경찰들은 이 광경을 사진으로 찍어 바시지 일원에게 보냈습니다. 그리고 이 사진은 이란에서 호다누르를 유명인으로 만들어 버렸습니다.

호다누르는 그의 가족이 이 “경찰”이라는 이름도 아까운 작자들에게 몸값을 지불하고야 감금에서 풀려났습니다. 하지만 그의 명은 오래 가지 못하여, 자헤단의 대량 학살 사건 때 정권의 요원들이 그를 죽였습니다. 이 유명한 사진은 많은 이란 국민들의 뇌리에 박혔습니다. 그리고 수많은 사람들이 스포츠 행사에서, 또는 예술 공연에서 이 자세를 취하여 그를 기렸습니다. 밑에 사진들에서 예시를 보실 수 있습니다.

그의 죽음에 책임이 있는 모든 자들은 반드시 그 책임을 지게 될 것입니다. 우리는 잊지도, 용서하지도 않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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